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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리그 투어

1. 자꾸만 손이 가요 손이 가, 모어컴(Morecambe FC)

안녕하세요, Men of the Bench입니다.

 

요즘 프리미어 리그 팀들이 카라바오 컵(EFL 컵)이니 FA 컵이니 하면서 경기가 굉장히 많죠. 저는 카라바오 컵에서 리버풀이 아스날한테 덜미를 잡히고 탈락한 바람에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은데요, 다들 재미있게 보시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생각보다도 이런 부류의 경기들에 대해 관심이 적더군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상대편이 도통 들어본 적이 없는 팀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근 경기 라인업에서 기억나는 팀 이름만 꼽아봐도 레이튼 오리엔트(Leyton Orient F.C.), 링컨 시티(Lincoln City F.C.), 반슬리(Barnsley F.C.) 등 생소한 곳들이 좀 많죠.  당장 프리미어 리그 경기만 해도 소위 말하는 '빅 6' 간의 경기가 아니면 안 팔리는 마당에(예컨대 우리나라에서 번리-아스톤 빌라 전을 중계해 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팀과의 경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리 만무합니다. 저도 모든 잉글랜드 축구 경기를 챙겨보는 건 아니지만, 몇몇 빅클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팀들이 -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마저도 - 병풍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병풍 팀'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이나 하부 리그의 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려 합니다. 1부 리그부터 하부 리그까지 잉글랜드 축구 리그에 속한 다양한 팀들을 소개할 예정인데 이 중 일부는 이름 정도만 들어보았을 수도 있고, 몇몇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르니까 재미가 없는 거지 재미가 없어서 모르는 게 아니거든요. 평소에 전혀 관심 없었던 팀이라도 스토리를 듣다 보면 나름대로 흥미로울 거라 생각해요.

 

 

19/20시즌 카라바오 컵에서 토트넘을 탈락시킨 4부 리그의 콜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런 팀들이 앞으로 <잉글랜드 리그 투어>에서 소개될 예정입니다 (사진 출처 : BBC)

 

아무쪼록, <잉글랜드 리그 투어>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많은 독자분들께서 프리미어 리그를 제외한 잉글랜드의 다른 리그들을 생소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아, 잉글랜드 리그의 시스템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1888년에 세계 최초의 프로 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Football League)가 설립된 이래로 잉글랜드에서는 수많은 축구 리그가 존재해 왔고, 그 체계가 어느 정도 통일된 현재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리그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TV 프로그램 <으라차차 김수로>에서 등장했던 첼시 로버스(Chelsea Rovers FC)가 당시 잉글랜드 13부 리그 소속이었으니, 잉글랜드 축구 시스템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만 이런 하부 리그까지 모두 프로 축구의 범주에 포함시키진 않고, 통상적으로 1~4부 리그를 프로 / 5~6부 리그를 세미프로 / 그리고 7부 리그부터 그 아래는 아마추어로 구분합니다. (참고로 이 칼럼 시리즈에서는 주로 2~5부 리그 수준의 팀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각 리그는 승강제, 즉 승격과 강등이 존재하기에 리그에 속해 있는 팀은 상위 또는 하위 리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의 최상위 티어는 흔히 들어 보셨을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 줄여서 PL이라고들 많이 합니다. 현재의 절대적인 위상과는 별개로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은 편입니다. 프리미어 리그가 설립된 것은 1992년의 일로 1980년대 잉글랜드 축구에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새출발을 하기 위해 기존의 풋볼 리그에서 독립해 출범한 것인데요, 그 내막은 혹시라도 1부 리그 팀을 소개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프리미어 리그는 98/99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트레블(Treble)을 달성하면서 급성장하게 되었고, 이제는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는 20개의 클럽이 있고, 매 시즌 리그의 최하위 3개 팀은 2부 리그로 강등(Relegation)됩니다. 예컨대 지난 19/20시즌에는 18위의 본머스와 19위의 왓포드, 그리고 20위의 노리치 시티가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며 20/21시즌에 이 세 팀은 2부 리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19/20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 글쓴이가 리버풀 팬이라 그냥 넣어봤습니다. (사진 출처 : Liverpool FC)

 

그런데 프리미어 리그가 독립하기 이전에도 원래 1부 리그라는 개념은 있었겠죠. 기존의 1부 리그(최상위 리그)는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Football League First Division)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1부 리그의 기능을 프리미어 리그가 맡아 버리게 되었으니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은 졸지에 의미가 없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리그는 1992년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고, 이름만 남아 기존의 세컨드 디비전(Football League Second Division)이 퍼스트 디비전, 써드 디비전(Football League Third Division)이 세컨드 디비전, 포스 디비전(Football League Fourth Division)이 써드 디비전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에 명칭이 다시 바뀌고, 2016년에는 풋볼 리그가 EFL(English Football League)로 재탄생하면서 최종적으로 현재의 2부 리그는 EFL 챔피언십(EFL Championship), 3부 리그는 EFL 리그 1(EFL League One), 4부 리그는 EFL 리그 2(EFL League Two)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3부 리그(EFL 리그 1)와 4부 리그(EFL 리그 2)를 이름 때문에 오해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 기회에 확실히 다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20개 팀으로 구성된 프리미어 리그와 달리 EFL의 각 리그에는 각각 24개의 팀이 있으며(즉, 치러야 하는 경기 수도 20개 팀의 프리미어 리그보다는 확연히 많습니다), 승격과 강등 양상에는 리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상위 2~3팀과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상위 리그로 승격(Promotion)되며, 하위 2~4팀이 하위 리그로 강등됩니다. 그나저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강등당하면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하는 셈인데, 뭔가 말이 이상한 표현 같기도 하네요. 시험 망쳐서 1등으로 성적 떨어진 느낌이랄까요..

 

 

잉글랜드 1~4부 리그의 '아주 간략한' 변천사

 

5부 리그인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는 프로와 세미프로의 경계선이자, 전국 단위의 리그 중에서는 최하위 리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무려 5부 리그까지 체계적인 전국 단위라는 것이니,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4부 리그인 K4리그까지 전국 단위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전 명칭인 컨퍼런스(The Conference)라고도 흔히 불리는 이 리그에는 프로 팀과 세미프로 팀이 섞여 있는데요, EFL 리그와 마찬가지로 24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 4개 팀은 6부 리그인 북부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 North) 혹은 남부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 South)로 강등됩니다. 즉 6부 리그부터는 전국 단위의 단일 리그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여러 개의 리그로 나누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아래로는 노던 프리미어리그(Northern Premier League), 이스미언 리그(Isthmian League) 또는 사우던 리그(Southern League) 등으로 훨씬 더 쪼개지는데 7부 리그부터는 아마추어 리그로 간주하므로 이 칼럼에서 거기까지 다루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5부 리그부터는 완전한 프로 리그가 아니라는 점에서 논 리그 풋볼(Non-League Football)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통상적으로 '리그(The League)'라고 하면 1~4부 리그를 가리킵니다.

 

 

19/20시즌 내셔널 리그를 우승한 배로우 AFC. 우리가 잘 모르는 리그에서도 축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National League)

 

도대체 별로 볼 일도 없는 하위 리그를 왜 굳이 다루냐, 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 세계의 축구 인프라가 집결하고 있는 요즈음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FA컵 같은 곳에서 하위권 팀들도 만나니 이름이나 알아둬라 같은 이유만은 아닙니다. 사실 그게 한 60% 정도 되긴 합니다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소위 '하부 리그'에서도 체계적으로 발전된 축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크리스 와일더의 셰필드 유나이티드나 비엘사의 리즈 유나이티드처럼 혁신적이고 강력한 전술을 보여주며 세계 전술의 흐름에 기여하는 팀들도 있습니다. 가끔은 토너먼트에서 하부 리그 팀들이 프리미어 리그 팀을 잡고 올라가는 "자이언트 킬링"이 벌어지기도 하죠. 또한 하부 리그는 잉글랜드 유일의 발롱도르 2회 수상자인 케빈 키건, 전설적인 골키퍼 고든 뱅크스부터 현재의 델레 알리(현재 토트넘)와 제이미 바디(현재 레스터 시티)까지 수많은 잉글랜드의 재능이 탄생하는 요람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다 보면 단순히 축구뿐만 아니라 영국(잉글랜드)의 지리와 문화, 전통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한 팀 한 팀 알아가는 재미가 분명 있을 겁니다!

 

어쨌든 서론이 길었네요. 드디어 첫 팀을 소개할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할 팀은 EFL 리그 2, 그러니까 4부 리그에 있는 팀이니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팀은 아닙니다. 혹여나 FM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눈에 띄는 로고 정도는 기억이 날 것 같네요. 근데 꽤 많은 분이 로고는 알 수도 있을 만한 것이, 한 번 보면 잊어버리기 힘든 로고이긴 합니다. 로고에 있는 거라곤 이름과 영롱한 새우 한 마리가 전부니까요. 솔직히 제가 첫 번째 팀으로 이 팀을 고른 것도 그냥 로고의 새우가 맛있어 보여서입니다(?). 그래서 기왕에 오늘은 혹자에게 어엿한 이름 대신 <새우 팀>으로만 알려져 있을 이 팀, 바로 모어컴 FC(Morecambe F.C.)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새우 그 자체. 근본 넘치는 모어컴의 로고 (사진 출처 : 모어컴 FC 공식 홈페이지)

 

우선 이름을 알아보겠습니다. Morecambe라는 영어 이름만 보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헷갈리죠. 한국에서는 모컴, 모어캠, 모어컴, 모아캠비 등 다양한 이름이 통용되는데 현지 발음을 들어보니 가장 정확한 쪽은 '모어컴' 같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모어컴 FC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모어컴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된 것이냐 하면 바로 이 클럽의 연고지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축구 클럽이 연고지에서 이름을 따 옵니다. 당장 우리에게 친숙한 프리미어 리그의 팀 이름만 해도 리버풀, 에버턴, 맨체스터 시티/유나이티드, 토트넘, 울버햄튼, 번리 등 클럽이 위치한 주 또는 도시, 마을의 이름을 따온 사례가 많습니다. 오늘 소개할 모어컴 FC도 모어컴(Morecambe)이라는 도시에서 이름을 딴 것인데, 아무래도 생소한 도시일 테니 클럽 소개에 앞서 인문학 여행 느낌으로 이 도시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어컴의 위치는 이 정도가 됩니다

 

모어컴은 잉글랜드 북서부의 랭커셔(Lancashire) 주에 위치해 있는데요, 랭커셔 주의 남쪽에는 그 유명한 리버풀과 맨체스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혹시 맨체스터와 리버풀이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이 태동했던 도시로 이곳에서 엄청난 양의 면직물과 공산품 등이 생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물품을 세계 곳곳으로 실어나른 항구도시가 바로 머지사이드 주의 리버풀입니다. 리버풀은 비틀즈나 축구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항구도시로의 명성이 매우 높은 도시입니다. 19세기에는 세계 물동량의 절반 정도가 리버풀 항구를 거쳤다고 하니 그 위엄을 알 수 있죠. 그 유명한 타이타닉 호가 1912년에 출항했던 곳도 바로 리버풀입니다. 모어컴 얘기하는데 왜 갑자기 리버풀을 꺼내냐고요? 글쓴이가 리버풀 팬이라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예입니다. 아무튼 모어컴 주위의 유명한 대도시로는 리버풀과 맨체스터가 있고,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어봤을 만한 도시를 찾자면 프레스턴, 블랙번, 번리, 랭커스터 정도가 있겠습니다.

 

사실 모어컴과 리버풀 사이의 거리가 꽤 되기는 하지만(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입니다), 리버풀과 마찬가지로 모어컴 역시 잉글랜드의 서쪽 끝에 위치한 해안도시로 아일랜드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모어컴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요, 과거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지도에서 이쪽 지역을 가리키던 이름인 'Moriancabris Aesturis'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후 변형을 거쳐 18세기 말부터 Morecambe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1889년에 이 이름이 공식적인 지명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모어컴에는 모어컴 베이(Morecambe Bay)라는 유명한 하구(estuary)가 있는데요, 이곳은 우리나라의 서해안처럼 넓은 개펄이 펼쳐져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창녕의 우포늪처럼 람사르 습지(Ramsar Wetland)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도시 자체가 이런 천혜의 환경이다 보니 모어컴에서는 전통적으로 어업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특산품으로는 가자미와 조개 등이 있습니다.

 

 

트랙터로 곰새우를 잡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IFCA North West)

 

하지만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걸 꼽자면 단연 갈색의 곰새우(brown shrimp)인데요, nobby라는 지역 고유의 어선을 이용해서 잡기도 하지만 주로 썰물 때 배를 띄우지 않고 트랙터로 그물을 끌고 다니면서 잡는다고 합니다. 모어컴의 곰새우는 특히 '포티드 슈림프(Potted Shrimp)'라는 영국 전통음식으로 애용되는 편인데, 오죽하면 모어컴 = 포티드 슈림프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입니다. 곰새우가 모어컴에서만 잡히는 건 아니지만 모어컴의 곰새우가 포티드 슈림프를 만들기에 크기와 당도 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하네요. 그나저나 포티드 슈림프라는 음식은 따뜻한 토스트에 발라 먹는 것이 국룰이라고 하는데요, 토스트에 새우를 발라 먹는다니 맛있을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영국 음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생각이 난다면 Men of the Bench에서 직접 사먹고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모어컴 포티드 슈림프는 굉장히 맛이 좋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Forman&Field)

 

아무튼, 드디어 팀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어컴 FC는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구 클럽이고, 리버풀을 The Reds라고 부르고 아스날을 The Gunners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팀은 The Shrimps(새우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보았듯이, 이 팀의 로고 역시 지역의 최고 특산물인 새우를 본따 만든 것으로 10/11시즌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전의 로고에서는 붉은 장미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붉은 장미는 모어컴이 속해 있는 랭커셔 주의 상징으로 이 붉은 장미로 유명한 블랙번 로버스(Blackburn Rovers F.C.) 역시 랭커셔 주에 있는 축구 클럽입니다. 참고로, 옆동네 요크셔(Yorkshire) 주의 상징은 하얀 장미인데 리즈 유나이티드(Leeds United), 셰필드 웬스데이(Sheffield Wednesday F.C.) 등 그 지역 팀들의 로고를 보면 하얀 장미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혹시 장미 전쟁(The Wars of the Roses, 1455-1855)을 들어 보셨을지도 모르겠는데 랭커셔와 요크셔는 역사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던 곳이고, 그 지역 감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랭커셔 팀들과 요크셔 팀들 사이에는 치열한 라이벌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다고 동네 사람들끼리 사이가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로즈 더비(Roses Rivalry)'로 잘 알려져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랭커셔)와 리즈 유나이티드(요크셔) 간의 더비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다만 모어컴 FC의 라이벌은 주로 같은 랭커셔 소속의 팀들로(...) 애크링턴 스탠리(Accrington Stanley F.C.)나 랭커스터 시티(Lancaster City F.C.) 등이 있는데요, 대부분이 다른 리그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모어컴 FC의 홈구장, 글로브 아레나 (사진 출처 : The Visitor)

 

모어컴 FC의 홈구장인 글로브 아레나(Globe Arena)는 해양 도시답게 바닷가에서 차로 5분 거리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래 크리스티 파크(Christie Park)를 사용했으나, 10/11시즌부터 이 경기장을 신축해서 사용하고 있고 현재는 스폰서인 마주마(영국의 폐휴대폰 재생 기업)의 이름을 따 마주마 스타디움(Mazuma Stadium)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약 6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메인 스탠드인 피터 맥기건 스탠드(Peter Mcguigan Stand; Wright and Lord Stand)을 제외한 나머지 스탠드에서는 전부 서서 경기를 봐야 합니다. 조사해보니 입장료는 £16~£26(한화 25,000원~40,000원) 정도로 괜찮은 수준인데요,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글로브 아레나에 관중이 가득 차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새우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팀 같지만 모어컴 FC는 현재 4부 리그 이내의 팀(프리미어 리그와 EFL 리그 소속팀) 중에서는 3부 리그의 AFC 윔블던(AFC Wimbledon)과 함께 클럽 역사상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는 유이한 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19/20 시즌 기준). 지금 프리미어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강팀들도 절대로 세울 수 없는 놀라운 기록이죠. 아니, 근데 그럼 클럽 역사상 최고 기록이 4부 리그라는 뜻이기도 하니... 흠좀무. 그렇다면 그 클럽의 역사라는 게 얼마나 되었느냐, 모어컴 FC가 1920년 5월 7일에 창단되었으니 올해가 딱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192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봉오동 전투가 벌어졌던 해이니 얼마나 클럽의 역사가 오래되었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4부 리그의 클럽조차도 이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니 종주국의 위용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모어컴 FC의 100주년 기념 로고. 모어컴은 전통과 역사가 있는 팀입니다 (사진 출처 : Morecambe FC)

 

모어컴 FC의 전신이 되는 지역 축구 모임 자체는 이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공식적으로 모어컴 FC라는 축구 클럽이 창단된 것은 1920년 웨스트 뷰 호텔에서 회의를 통해서입니다. 모어컴 FC는 20/21시즌부터 노스웨스트잉글랜드(North West England)의 지역 리그인 랭커셔 컴비네이션(Lancashire Combination)에 참가하게 되었고, 창단된 첫 시즌에 10승 5무 19패, 총 25점의 승점을 거두면서 13위의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1981년 전까지 잉글랜드 리그에서 승리 시 승점은 3점이 아니라 2점이었습니다. 승점에 관해 언젠가 별도의 칼럼을 작성해 볼 계획입니다). 특기할 점은 홈에서의 승률이 매우 좋지 않았다는 점인데, 1920년 8월에 첫 리그 경기를 소화한 이래로 홈에서는 내내 죽을 쑤다가 1921년 1월이 되어서야 첫 홈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네요. 해당 시즌에는 홈 구장으로 지역 연고의 크리켓 클럽이 사용하던 우드힐 레인(Woodhill Lane)을 빌려 쓰고 있었는데요, 축구 클럽이 아닌 크리켓 팀의 경기장을 사용하는 것에 FA가 우려를 표했고 모어컴 FC는 시즌 종료 이후 로즈베리 파크(Roseberry Park)로 홈구장을 옮기게 됩니다. 이후 당시 모어컴 FC의 회장이었던 J.B.크리스티가 로즈베리 파크의 부지를 구매하면서 로즈베리 파크는 그의 이름을 따 크리스티 파크(Christie Park)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고, 2010년 새 구장(글로브 아레나)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24/25시즌에 처음으로 랭커셔 컴비네이션 우승컵을 들게 된 모어컴 FC (사진 출처 : The Visitor)

 

모어컴 FC의 역사는 여느 팀이 그렇듯이 굴곡이 많습니다. 크리스티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성장하면서 24/25시즌에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랭커셔 주니어 컵(Lancashire Junior Cup)도 2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등 영광의 시간을 누렸다가도, 1930년대에는 팀 내·외부적으로 위기가 닥치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모어컴 FC는 점차 성장을 위한 인프라를 갖추어 나갔고, 1960년대에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리그에서 네 차례 우승할 뿐만 아니라 FA 컵 3라운드에 진출하면서 잉글랜드 축구에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1968년에는 새로이 창설된 북부 프리미어 리그에 합류하면서 지역 강자의 반열에 올랐고, 1974년에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다트포드를 꺾으면서 FA 트로피(*FA 컵과는 다른 대회입니다)를 우승하게 됩니다.

 

 

1974년 FA 트로피를 우승한 모어컴 FC (사진 출처 : The Visitor)

 

이후 암흑기가 다시 찾아오지만 1985년 즈음부터 개혁을 시도하며 반등이 시작되고, 10년 후 94/95 시즌에는 짐 하비(Jim Harvey) 감독의 지도 하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전국 단위의 리그인 풋볼 컨퍼런스(Football Conference; 현재의 National League)로 승격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컨퍼런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FA 컵에서 모습을 종종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02/03 시즌과 05/06 시즌 두 차례나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탈락하면서 승격의 눈앞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게 되죠. 특히나 2005년 11월에는 1994년부터 쭉 팀을 이끌어오던 하비 감독이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 도중 심장마비를 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하고, 구단은 하비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기도 한 새미 매킬로이(Sammy Mcilroy)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바로 다음 시즌인 06/07 시즌에 매킬로이 감독은 엑서터를 2-1로 꺾으면서 플레이오프를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EFL 리그 2(4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켰고, 하비 감독은 돌아오자마자 구단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임을 통보받고 맙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승격의 기세를 타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11년 동안 팀을 위해 봉사한 레전드인 하비 감독에 대한 예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행히 올해(2020년) 3월 구단 측에서 감독으로서의 성과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하비 前 감독을 종신 부사장(vice-president)으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모어컴 FC의 짐 하비 前 감독. (사진 출처 : The Visitor) 

 

아무튼, 모어컴 FC는 승격된 07/08시즌 이래로 현재까지 EFL 리그 2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09/10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EFL 리그 1으로의 승격 가능성을 점쳤으나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FC에 패배하면서 준결승에 그치고 말았고, 이 기록이 클럽 역사상 리그에서의 최고 기록입니다(공교롭게도, 02/03시즌에 컨퍼런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할 때도 모어컴 FC의 상대는 대거넘 앤 레드브리지 FC였습니다). 이 시즌을 끝으로 모어컴 FC는 글로브 아레나로 홈구장을 옮겼고, 11/12시즌부터는 2007년 승격 당시 팀의 주장이기도 했던 짐 벤틀리(Jim Bentley)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리그 11위까지(14/15 시즌)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데렉 아담스(Derek Adams) 감독이 2019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데요, 요즘 들어 모어컴 FC에 위기의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지난 시즌인 19/20 시즌에는 경기당 평균 승점 0.86점으로 리그 22위에 그쳤는데, 코로나로 인해 리그가 조기 중단되었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22위라면 강등권을 바로 빗겨난 순위이니 강등 0회라는 클럽의 기록이 자칫 깨질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2020. 09. 23.)에는 카라바오 컵 3라운드에서 뉴캐슬을 만나 7:0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패배했는데요, 이는 21세기 이래로 모어컴 FC의 역사상 가장 큰 패배라고 합니다(15/16시즌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경기[7:0]와 공동 1위). 다행히 리그에서는 현재(10월 3일 기준) 2위로 산뜻하게 순항 중인데요, 과연 모어컴 FC가 이 기념비적인 100주년 시즌에 기억될 만한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모어컴 FC의 100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순항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출처 : EFL)

 

첫 칼럼이라 그런지 더더욱 정감이 가는 새우 팀, 모어컴 FC였습니다.

다음 편에는 블랙풀(Blackpool F.C.)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ritten by 배기찬 of 벤치남들